인생의 시기마다 다양한 친구를 만나게 되지만, 어떤 친구는 피상적인 관계에 머무르는 반면 어떤 친구는 매우 깊고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친구관계에서는 대상의 선택뿐 아니라 친구관계를 심화시켜 친밀하고 깊이 있는 관계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관계의 깊이를 알아보기 위해 흔히 던지는 물음들이 있다. 매우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내가 개인적인 곤경에 처했을 때 자신의 일처럼 도와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사전 양해 없이 불쑥 방문해도 개의치 않을 친구가 있는가? 이런 물음에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현대인은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지만 깊이 있는 친구관계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를 원한다.
그러나 친밀한 친구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과연 친구관계는 어떻게 깊어지는 것일까? 친구간의 상호작용에는 여러 가지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다양한 심리적 체험을 하게 된다. 친구관계는 이러한 상호작용의 내용과 질에 따라 그 관계가 심화되기도 소원해지기도 한다. 친밀하고 깊이 있는 친구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를 발전시키고 심화시키는 요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 친구관계의 발전단계
인간관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전한다. 처음에는 낯설던 사람이 만남의 횟수가 증가하면서 점차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친밀감이 증진되어 깊은 우정으로 발전된다. 인간관계의 발전 정도는 친밀감의 정도에 의해 평가된다. 휴스턴과 레빙거(1978)는 인간관계의 친밀성이 두 사람 사이의 상호의존성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친구관계는 3가지 단계를 통해 발전한다. 첫 단계는 두 사람간의 직접적 접촉이 없이 다만 관찰을 통해 서로를 알고 있는 단계로서 면식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두 사람이 일방적으로 또는 서로 알고는 있으나 대화나 공동활동 등의 직접적인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지니고 있는 상태이다.
두 번째 단계는 접촉의 단계로서 두 사람 사이에 직접적인 교류가 일어나는 단계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접촉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거나 업무와 관련된 역할수행을 위해서 접촉이 일어나는 형식적인 관계에 머무른다. 이러한 형식적 관 계에서는 상대방을 독특한 인격적 존재로 대하기보다는 상황이나 제도가 부여한 역할을 수행하는 역할수행자로서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독특한 인격적 특성에 대한 정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즉, 역할을 수행하는 인간보다는 역할 자체가 중요시된다. 따라서 이러한 단계에서는 상호의존성이 나 친밀감이 증진되기 힘들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상호의존의 단계로서 두 사람 사이에 크고 작은 상호의존이 나타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교류가 증진되고 심화되어 공유된 경험의 영역이 확대된다. 특히 이 단계에서는 상호교류가 개인적 측면의 수준까지 발전하는 사적인 관계로 진전된다. 이러한 수준에서는 서로의 깊은 내면적 세계, 즉 상대방의 성격, 가치관, 고민 등을 공유함으로써 상호의존의 깊이가 깊어지고 영역이 넓어진다.
2. 친구관계의 발전 및 심화 요인
만남의 횟수가 많아지고 교제의 기간이 길어진다고 해서 친구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친구는 수년간 사귀어 왔지만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왠지 친밀감과 신뢰감을 느끼기 어렵다. 친구와의 만남에서 어떤 교류가 이루어지느냐는 점이 친구관계의 발전에 중요하다. 친구관계를 비롯한 인간관계를 심화시키는 주요한 요인으로는 자기 공개, 정서적 지지와 공감, 현실적 도움의 교환, 즐거운 체험의 공유 등을 들 수 있다.
[자기공개]
인간관계의 심화를 위해서는 자신을 상대방에게 잘 알리는 동시에 상대방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에 대해서 깊이 알수록 서로에 대한 친밀감과 신뢰가 깊어진다. 인간관계에서 자신에 관한 정보를 타인에게 알리는 것을 '자기 공개'라고 하며, 이는 인간관계가 심화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자기 공개를 많이 할수록 친밀해지며, 친한 사이일수록 자기 공개가 증가한다.
또한 친밀해질수록 자기공개의 수준이 깊어진다. 깊은 자기 공개에서는 자신에 관한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사적인 정보를 상대방에게 공개한다. 초기의 인간관계에서는 개인의 공적인 정보(이름, 나이, 학력, 직업이나 직장 등)를 알리는 피상적인 자기공개가 이루어진다. 점차 관계가 진전될수록 개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정보가 공개된다. 개인의 사적인 취향이나 태도(관심사, 취미,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이나 입장 등)가 공개된다. 그리고 깊은 수준의 자기공개에서 개인의 매우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정보(개인적 고민이나 가족갈등, 열등감, 신체적 결함, 돈에 관한 재정 상황 등)가 공개된다. 자기공개의 수준은 친밀감이 증가할수록 점진적으로 깊어진다. 이러한 공개수준 역시 상호적이어서, 한 사람이 좀 더 깊은 자기공개를 하면 상대방도 그에 준하는 수준의 자기공개가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을 잘 알수록 대화의 주제가 넓어지고 상대방의 언행을 공감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기 쉽고 상대방의 의도를 오해하는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 갈등이 감소할 뿐 아니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자기공개를 통해 친밀감이 증진되고 친밀감이 증진되면 자기공개 수준이 심화되는 과정을 통해 우정과 신뢰가 깊어지게 된다.
[정서적 지지와 공감]
자신을 잘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친구에게는 편안함과 신뢰감을 느끼게 된다. "힘들 때 힘이 되어 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정서적 위로와 지지를 보내 주는 친구에게서 우정을 느끼게 된다. 정서적 지지는 상대방에 대한 칭찬, 격려, 공감, 위안 등 을 통해서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는 행동을 말한다. 특히 공감(empathy)은 상대방이 느끼고 있을 감정을 함께 느끼고 전달해 주는 것으로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반영한다. 이러한 정서적 지지와 공감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심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정서적 지지와 공감은 상대방의 자기 공개를 촉진한다. 자신에 관한 비밀스런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상대방이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더 깊은 자기 공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자기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서적 지지와 공감을 보여줄 기회를 갖기 어렵다. 예컨대, 절대로 자신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정서적 지지와 공감을 보여주기 어렵다. 또한 자기 공개의 교환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을 때, 상대방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서 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자기 공개와 정서적 지지는 상호촉진적인 관계를 지니면서 인간관계를 심화시킨다.
[현실적 도움의 교환]
현실적 도움을 주고받는 친구관계는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풍요로울 때는 벗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역경에 처했을 때는 우리가 벗들을 알아본다."라는 말이 있듯이, 특히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정서적 지지뿐 아니라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친구에게 우정을 느끼게 된다. 현실적인 도움은 재정적 또는 물질적 도움뿐만 아니라 정보의 제공과 교환을 포함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다. 이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삶의 커다란 힘이 된다. 사회적 기능 이 분화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친구가 정서적 지지뿐 아니라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대상이 된다.
인간관계는 대부분 교환적인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현실적 도움 역시 주고받는 간형적인 교환이 중요하다. 현실적인 도움을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기만 하는 인간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현실적인 도움의 내용과 형태는 다르더라도 서로 균형있게 도움을 주고받을 때 상호의존성이 깊어지고 친구관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즐거운 체험의 공유]
즐거움과 유쾌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자꾸 만나게 된다. 취미나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끼리 서로 나누는 재미와 즐거움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주요한 원천이 된다. 여기서 즐거움은 단순한 쾌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가치관, 인생관, 종교관 등이 같은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받기 때문에 만남이 즐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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